독자님 안녕하세요! 메일링크 대표 덩이입니다. 😀 한 주 건강히 잘 지내셨는지요? 혹시 지난주 레터를 놓치셨다면 <지난 레터 보러가기>! 저는 지금 도서관에 앉아 레터를 쓰고 있는데요,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볼 때마다 무섭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나갈 엄두가 나질 않네요.😭 여름을 대표하는 두 가지 대립하는 키워드 '뜨거움' 그리고 '꿉꿉함' 중 '꿉꿉함'이 압승하고 있는, 장마의 나날입니다. 오늘 레터는 비 오는 날 시간을 들여 읽기 좋을, Yoko 작가의 에세이 입니다. 키워드는 고독, 시, 그리고 삼킴입니다. 여러분은 차마 삼키지 못한 마음이 있나요? 삼킴 장애의 평가와 치료 사랑하는 연에게
도무지 쓸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면 언제나 그랬듯이 하루키의 굴튀김 이론을 떠올리게 돼. 자기소개를 어떻게 써야 좋을까요? 누군가의 질문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말했지. 원고지 몇 장에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러니 굴튀김에 대해 쓰라고. 그러다 보면 굴튀김과 관련된 자신의 상관관계라든지 연관된 이야기에 대해 쓸 것이고,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왜 다름 아닌 굴튀김이냐고? 그건 단지 하루키가 굴튀김을 좋아하기 때문이야. 한 입 베어 물면 비릿한 바다 내음과 함께 혀끝에 바삭하고 말캉한 식감이 느껴지는 굴튀김. 하루키에게 굴튀김이 있듯이, 내가 좋아하는 너에 대해 쓸 때면 어느 때고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 굴튀김은 비릿하고, 바삭하고, 말캉한 단순 안주거리일 뿐인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름답고 슬프고 다채롭고 예술적이라, 풍성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만하지. 그러니까 사랑하는 연아. 늘 그랬듯이 글이 찾아오지 않는 날의 시작은 네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다는 거야. 오늘처럼 비가 추적이는 날에는 몇 년 전 너와 함께 보낸 천안에서의 밤이 떠올라. 둘 다
홀로 살림을 꾸려가던 나날들 중 하루였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우리이지만 우리 역시 인간이기에 외로움이라는 것과 완벽하게 분리될 수는 없어서, 외롭고
괴로운 날이면 고속버스를 타고서 서로를 찾곤 했어. 고독하되 고립되지는 않는 연습이었지. 고독과 고립은 종이 한 장 차이라, 철저하게 혼자이되 처절하게 혼자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고 일기장에 한 귀퉁이에 적어두었던 게 기억이 나. 딥하우스 비트가 낮게 울려 퍼지는 지하의 라운지에는 몇 안 되는 손님들이 한 손엔 병맥주를 들고 가볍게 몸을 흔들고 있었고, 술기운이 올라온 너는 평소에는 좀처럼 피지 않는 담배 한 모금이 간절했나 봐. 비척비척 밖으로 나서는 너를 따라나섰어. 왜인지 그날은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았거든. 어깨 위에 대강 걸친 노란 우산,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불이 붙은 담배꽁초, 주위를 둘러싼 희뿌연 연기 사이로 참지 못하고 너를 껴안았던 감각이 아직까지도 생생해. 너는 나더러 왜 네가 대신 눈물을 흘리냐며 놀리듯 한숨 같은 웃음을 내뱉었는데,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데도 네가 한없이 외로워 보이는 날이면 그날의 너를 나는 아직까지도 겹쳐 보곤 해. 그러니까 요즘의 너를 볼 때도 나는 자꾸만 그날을 떠올리고 만다는 거야. 그때쯤 너에게 선물했던 시를 기억해? 스치듯 좋다고 말한 시라 편지로 적어줬었는데. 어느 시인의 말처럼 궁지에 몰린 삶을 밥처럼 씹어대고 미처 소화시키지도 못한 채 슬픔을 유예시키다가 뒤늦게 아파하는 네가 안쓰러워서, 너에게 바라는 한 가지 바람만을 담은 시였어. 요즘의 너와 내게도 다시 초대시키고 싶은 이야기라, 시의 내용을 나의 언어로 옮겨볼게. [내 친구 미선이는 언어치료사다
얼마 전 그녀가 틈틈이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삼킴 장애의 평가와 치료'
희덕아,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
여러 가지지만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 미선] '나'의
친구 미선이는 언어치료사야. '나'에게 어느 날 미선이는
틈틈히 번역한 책을 선물해. 제목은 『삼킴 장애의 평가와 치료』야. [입 속에서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져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슬픔,
이런 것들로 흥건한 입 속을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게 된 우리는
삼킴 장애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미선아.] 세상에는 삼켜야만 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 입속에서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져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슬픔... 그러나 미선은 이 모든 것을 수용하며 회덕에게 이렇게 말해. 이 모든 것들을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감사하자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영위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의 입속에도 이런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다는 사실이 어느 날의 우리를 버티게 하고, 어느 날의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드는 것 같아. 그래서 화자는 "이런 것들로 흥건한 입속을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게 된 우리를" 단지 "삼킴 장애의 종류가 조금 다른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지.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마지막 연이야. [미선아,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 희덕] 화자는 삼킴 장애를 막기 위해 별다른 장엄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아.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감사하자"라는 미선에게,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라며, 약간의 주체성만을 담은 바람을 이야기할 뿐이지. 대단한 방도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말하듯
"삼킬 수 없으면 삼키지 않아도 돼!"라니. 1 더하기 1은 2라는 명제처럼 자명한 사실 아니니. 그럼에도 우리가 이 시에서 위로를 얻는 이유는 삼켜야만 하는 것과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그걸 토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익숙한 사실조차 잊어버리기 때문일 거야. 예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가 이런 당연한 말이라는 사실이, 단순한 공명이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어. 대신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었지. 그러한 감각만이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위안 같았거든. 하지만 이해하고 이해받기를 수없이 시도하고 시도
당하면서, 완벽한 이해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됐어.
인생의 그래프가 온전히 일치하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서로가 한없이 친밀하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유구한 세월 동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존재들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말처럼
오만한 말이 또 있을까, 의문을 품게 됐어. 그리고 이해란
존재하지 않음을 이해하게 됐지. 내가 너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해도, 그건
내가 너를 이해했다는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거야. 어쩌면 이해는 단지 시도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몰라. 때로 이해는 물에 젖은 장작에 불씨를 붙이려는 노력과도 같은 것처럼 느껴져. 우린 낙오됐고, 물가 근처의 나무에 몸을 기대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어. 그런데 너무 추운 거야. 주변에서 간신히 땔감으로 쓸 만한 것들을 가지고 오는데 물가에 있어서인지, 지난밤 비가 왔는지, 나무 가지들은 죄다 젖어있어. 젖은 장작이니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안 붙지. 그렇지만 계속 시도는 해야 해. 날은 춥고 밤은 다가오니까. 간신히 불 붙인 장작에서는
연기만 풀풀 나. 부연 연기에 잠시 콜록거려. 그래서 조금
쉬었다가 장작이 완전히 마르면 다시 도전하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불이 잘 붙는 건 아니지만, 계속 시도는 해야 해. 치익 칙.
라이터를 계속 딸깍이면서. 일단 너무 추우니까. 추운
와중에 밤은 자꾸 가까워지니까. 여전히 나는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 앞에서 무력한 존재지만, 예전처럼 삼킬 수 없는 건 삼키지 말자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면서 슬퍼하지 않아. 대신 더 말하고, 더 시도하려고 노력하지. 존재만으로도 느껴지는 공명의 힘과 시도만으로도 존재하는 이해의 힘을 알기 때문이야. 그런 마음으로, 지금의 너에게 당연한 이야기를 한 번 더 전하고 싶어.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슬픔들을 모두 삼킬 필요는
없다고, 우리에게는 다시 토해낼 힘이 있다고 말이야. 언젠가 너와의 이야기를 충일하게 담아낼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당연한 이야기를 너에게 전해. 삼킬 수 없는 것은 삼키지 말자고.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고. ![]() 💭에세이스트, Yoko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이 있어요. 절망은 쉬우니까, 이왕이면 시선을 떨구지 않고 희망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절박함이 아닌 절실함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8월 둘째 주, 메일링크 소식 👻 당신이 찾던 그 작가_03 작가 발굴 인터뷰 세 번째 주인공입니다. 30편에 가까운 시를 메일링크에 발행해주셨는데요, 저도 작가로서 그 꾸준함과 성실함에 감동받습니다. 자주 쓰는 사람, 이신삼 시인을 소개합니다. 시인, 이신삼 [저] 어떤 시집 "누구나 한 번쯤 홀로 흘려보내는 시간들에 대해 씁니다. 한 자, 두 자 적다 보니 자주 쓰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작가 소개 가끔은 적어 내려가는 것이 아닌 속에 있는 것을 토해내는 기분이 듭니다. 제 속에서 뛰쳐나온 것들이 타인에게 가닿을 때에는,반짝임 이라던가 온기를 지니고 있기를 늘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나 빛을 지니고 있다는 것”. 전하고 싶은 전부입니다. 이신삼 시인이 궁금하다면? 👉인스타 게시물 보러가기 메링이의 글쓰기 꿀팁_03 필사, 그거 하면 진짜 좋아요? 😯 빠르게 좋은 문장을 익히는 지름길을 알려드릴게요. 남의 글을 그대로 베껴 쓰는 일, 바로 '필사'입니다. 그대로 따라 쓰는 것 뿐인데, 정말 도움이 될지 의심스러우신가요? 베껴 쓰기의 미학 네 가지를 함께 알아봐요! 뒤 내용이 궁금하다면? 👉게시물 확인하고 필사로 네 마리 토끼 잡기 준비된 내용은 여기까지 입니다. 어떠셨나요? 위클리 메일링크의 에세이 한 편과 함께 즐거운 연결의 시간이 되셨길 바라요. 😊 위클리 메일링크는 세 명의 작가, 덩이, 연, Yoko가 돌아가며 에세이를 보내드립니다. 다음 주는 저 덩이의 에세이로 찾아오겠습니다. 그럼, 빗줄기가 시야를 가리는 8월 둘째 주도, 되도록 실내에서 뽀송뽀송하게 지내며 마무리하시길 바라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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