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어머니는 막내의 손을 잡고 마트를 향한다. 무언가 결심한 듯 상냥한 목소리로 예상치 못한 말을 꺼낸다. 아이는 당황한다. 어머니 옆에 꼭 붙어서 걸음을 옮긴다. 평소에는 조금이라도 더 구경하고 싶어서 잔꾀를 짜내던 공간이다. 상상 속에서 거침없이 달려가던 그곳. 막상 들이닥치니 쭈뼛쭈뼛 눈치만 보고 있다.
유리 진열장 속에 아기자기한 게임 패키지가 빼곡하다. 포스터에는 멋진 모델이 활짝 웃으며 닌텐도DS를 조작하고 있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게임기가 여럿 전시됐다. 괜히 한 번 접었다가 펴본다. 어머니는 게임을 사주려고 한다. 게임을 사기 위해서는 며칠을 애원해야만 했었다. 갑작스럽게 게임 자유 선택권을 손에 쥔 아이는 어머니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어린 나이임에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어딘가 슬퍼 보였다.
스물두살이 된 아이는 여전히 마트의 게임 매장에 가는 꿈을 꾼다.
먼저 길을 잃는다. 건물은 크고 복도는 길다. 마음이 급하다. 빨리 매장을 찾지 못하면 영업시간이 끝나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다. 현실에서 이미 가지고 있는 게임을 평생 보지 못할 게임처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곳에 가야만 한다. 갖고 싶다기보다는 뭐랄까. 소중한 사람이 사무치게 원하는 물건을 찾으러 가는 기분이 든다. 꿈속의 나는 물건보다 감정을 쥐고 싶은 것 같다.
미안한 게 많아 아들.
며칠 전 어머니는 내게 가벼운 사과를 하셨다. 어린 시절의 막내에게 가끔 버럭버럭 화를 냈던 것이 자꾸 생각나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잘해준 기억밖에 없는 나는 철 없었던 제가 더 죄송하다고 맞받아쳤다. 당시 다사다난했던 어머니는 속앓이를 많이 하셨다. 이제서야 알아챌 수 있는 마음들을 마주하는 게 부끄러울 뿐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날을 수도 없이 되짚는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 아이를 바라보던 촉촉한 물방울. 상냥하지만 어딘가 어색했던 말투. 잘 알지도 못하는 게임을 점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목소리. 누군가와 분주하게 전화하는 모습.
어머니는 내게 위로받고 싶었다.
게임을 사서 신나는 막내의 마음속에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힘이 있었겠다. 그 생명력 있고 아무런 그림자 없이 순수하게 기쁜 감정. 어머니는 막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고민했다.
게임 매장으로 발을 맞추어 걷던 우리가 자꾸 생각난다. 어머니의 푸른 기대와 기쁜 아이. 무겁게 떨어지는 시간들. 꿈결 같은 단어. 가족. 평생 손에 쥐어왔던 우리의 감정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아직도 게임을 사는 일은 가슴이 터지도록 설레는 일이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얼마나 돈을 벌든 그것은 변치 않는 사실일 것이다.
내가 진정 찾고 있는 건 물건이 아니니까. 그것은 힘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어머니가 내 마음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다.
저는 아직도 게임을 사면 행복해요. 그때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