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드라이브의 조수석에서
자정이 넘은 시각, 우리는 버스가 끊긴 도로를 달리고 있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사람이 운전대를 잡았다. 초보자 특유의 조심스러움이 믿음직스러운 운전 실력으로 이어졌기에,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나는 마음을 놓고 창밖을 구경할 수 있다. 나는 면허를 딴 지 일 년이 지났고, 추가로 돈을 들여 도로 연수 10시간까지 받았는데 아직 운전이 무섭다. 운전하는 나를 상상만 해도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운전했을 때는 작년 가을,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친구를 데려다 줄 때였다. 왕복으로 30km를 주행하고 무사히 주차까지 마쳤으나 벌렁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어 밤 동안 진정제를 두 번이나 먹었다.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을까? 모든 초보운전자가 처음에는 똑같은 불안을 견뎌냈을까?
조수석에 탄 나는 운전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라도, 운전자가 된 것처럼 창밖을 살핀다. 차선을 변경할 때마다 덩달아 사이드미러를 보고, 마음속으로 핸들을 돌리는 식이다. 내가 운전하는 게 아님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려온다. 그 와중에 우리의 목적지는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다. 중간에 주유도 해야 하고 갈 길이 멀다.
첫 번째로 찾아간 주유소는 불이 꺼져있었다. 두 번째로 찾아간 주유소는 우리가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불이 꺼졌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세 번째 주유소에 갈 때는 출발하기 전에 전화를 걸어 영업 중인지 확인했다. 그렇게 도착한 세 번째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가득 넣었다. 초보 운전자의 첫 주유였다. 어릴 적엔 주유소에 가면 진동하는 기름 냄새가 역해서 코를 막았다. 구역질하는 시늉을 하면서 아빠를 불렀다. 어서 이곳에서 탈출하자고 투정을 부렸다. 이제 나는 나보다 어린 초보운전자가 우리의 새벽 여행을 위해 인생 첫 주유를 마치는 모습을 본다.
문득, 모든 익숙한 것에도 처음이 있었을 거라는 사실이 나를 관통한다. 나는 언제나 새로움보다 익숙함을 택해왔다. 익숙한 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함을 좋음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처음부터 편하진 않았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든다.
좋아하는 곡들로 채워진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아는 노래 다음에 아는 노래, 그리고 아는 노래가 나온다. 그 예측 가능한 ‘뻔함’이, 안심감을 준다. 또다시 문득, 모든 새로운 것은 헌것이 된다는 사실이 나를 관통한다. 결국엔 나에게 머무는 모든 것이 새로움의 탈을 벗고 끝도 없이 뻔해진다. 그러니, 낯익고 익숙한 것을 사랑하는 나는 얼마나 행운인가?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바다가 보인다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바다는 보일 수도 안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건 상관이 없다. 도로를 달리며 노래를 듣고 적당한 박자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드라이브의 핵심이니까. 창밖을 향하는 눈에는 새로움이, 음악이 가득 흐르는 차 안에서 귀에는 익숙함이 들어찬다. 새로움이 적당한 박자를 타며 익숙함 속으로 녹아드는 걸 느낀다.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익숙함의 세계가 한 폭 넓어진다. 다음에는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지. 대신, 익숙한 사람을 옆에 태우고 질리도록 많이 들은 플레이리스를 틀어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