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
침대 협탁을 샀다. 좌식 책상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다. 어느 순간부터 짐으로 쌓인 책상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게으르다거나 수납공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내게는 정리해야만 하면서도 눈에 꼭 들어와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이전에는 책상 한구석에 정갈히 자리 잡고 있던 책들을 협탁 밑 공간에 내려놓는다. 나는 책상에 팔꿈치를 기댄 채 아끼는 만화책의 책등을 본다. 두 번째 금붕어.
연못 같은 발음으로 ‘지-느-러-미’ 중얼거린다. 혀를 과장해서 굴려본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도 시도한다. 어떤 혼잣말은 스스로 헤엄칠 줄 알았다. 그래 역시 너는 내가 아끼는 책이야.
책 옆에는 시디가 기대고 있다. 프롬의 미드나잇 블루. 한강으로 추정하는 장소에서 프롬이 빨간 캔디를 입에 넣고 있다. 밤하늘은 푸르다. 나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저 표지를 보면 멜로디보다 물 내음 섞인 캔디가 먼저 다가온다.
어머니는 시내에 볼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가셨다. 들뜬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는 아이의 태연한 기대를 업고 어머니를 음반점으로 이끌었다. 이는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모바일 기기로 자주 듣지만 음반으로 소장하고 싶은 가수. 들어본 적 없지만 평론 사이트에서 자주 극찬을 받던 음반. 표지가 마음에 깊숙이 박히는 음반. 그래 너다. 하다 보면 어느새 어린 밤의 우리가 되곤 했다.
나는 가끔 담백하고 싶다.
아. 정돈된 어질러짐. 손톱 아래로 스며드는 햇빛 같은 일렁임이 좋다. 혼자 지내는 방에서 우리는 종종 수다스럽다. 이 시간이 충분하다고 착각할 즈음에 노트북을 열어서 할일을 뒤적거린다.
말이 없는 디퓨저와 향이 가득한 나의 글. 단어를 조각내고 정리해야 되는데, 여전히 꼭 눈에 들어오는 건 감정들이다. 과제 하나 적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정보 구조도를 설계하다가 손끝에서 봉숭아 꽃물이 흐른다.
이게 뭐지. 나는 담백하고 싶은데.
무엇에 열중하고 싶은 걸까. 사람이나 추억. 장소, 바람의 속도 같은 취미가 떠오른다.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샘한다. 한 톨만큼 비껴간 욕망과 기복을 마주친 것도 같다. 눈에 담았던 것을 목뒤로 흘려보내기도 한다. 스스로를 간지럽힐 수 있는 사람과 시집 한 권을 한 달 만에 적어 내리는 사람. 소소하게 인사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
방금은 새로 구매한 무드등의 설명서를 읽지 않고 버렸다. 제법이구나. 그러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날 수도 있을 텐데. 꿈에 빠질 자신이 있는 거니.
협탁 위에는 무엇을 두어야 할까. 자주 오가는 물건이 좋지 않을까. 그래. 금방 정리되는 꾸준함으로 살아가자.
담백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