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에게
어제는 한강 공원에 갔어. 바다를 사랑하는 내가 도심 한복판에서 유일하게 그리움을 달랠 수 있는 곳. 해가 질 때의 강은 세상의 모든 색을 다 품고 있는 듯해. 너와 봤던 야경도 좋았지만 이 시간의 빛깔을 넘어설 수는 없을 거야.
물결치는 강을 보면 내가 밟고 선 이 땅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져. 사실 그 파동은 바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란 걸 머리로는 알지만 끊임없이 일렁이는 그 움직임에 생동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니. 살아있는 무언가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내 곁의 모든 것을 잘 보듬고 싶어져.
그래서 말인데,
잘 지내지?
매일 점심을 편의점 김밥으로 때우던 네가 늘 걱정됐는데,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잘 챙겨먹고 있으려나. 너를 그렇게 나무라던 게 머쓱하게도 이젠 내가 건강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네. 타인을 걱정하는 것은 쉽지만 나를 챙기는 건 왜 이리 어려운지. 왜 우리는 우리에게 이다지도 냉정할까.
네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
네가 그랬잖아. 작가에게 가장 큰 슬픔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작품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것을 절대 볼 수 없다는 것이라고.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것일지도 모르고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겠니, 라고.
어떤 말은 사라지지 않는대. 뼈가 되고 살이 되어 내 안에 남아있대. 네가 해준 말이 내게 얼마나 커다란 위안이 되었는지 너는 알까.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했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너무도 냉정하고 그런 나에게서 조금이나마 거리를 둘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이기 때문이라고. 그게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실감해. 너의 존재로 나는 나를 겨우겨우 보듬고,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나는 그렇게 계속 쓰고 있어. 너의 말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 해도 너는 내 곁에 있는 거야.
해가 사라지고 있어. 강물 위에 바스라진 빛들은 바다를 건너 열두 시간을 지나 네게도 도착하겠지. 우리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봐. 그러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섞여버린 이 세상을 떠올리고는 잠시 어지러워져. 너는 나의 과거이고 나는 너의 미래. 동시에 현재를 사는 우리. 네게 보내는 이 느리고 느린 편지는 현재를 지나 과거인 동시에 미래를 담고 있겠지. 신기하지 않니?
여름이 긴 곳에서 태어난 네가 부러워. 거긴 따뜻하다 못해 덥겠지. 정작 너는 더위에 취약해서 볼멘소리를 할 테지만. 우린 서로의 나라에서 태어났어야 했다고 농담했던 기억이 나. 그랬으면 우리는 만족했을까. 어쩌면 낯선 것에 마음을 뺏겨 또 다시 서로를 부러워할지도 모르겠어. 그치만 적어도 너는 이곳에서 지냈었잖아. 그게 외려 더 큰 그리움을 너에게 안겨주었으려나. 그렇다고 해도 슬퍼하지 않을 너를 알아. 너는 언제나 찾아오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이었으니까.
모든 게 불확실한 요즘의 세상에 미래를 약속한다는 것만큼 허망한 건 없지만, 그래도 약속하고 싶어. 널 만나러 갈게. 우편이 아닌 내가 직접 편지를 전하러. 약속, 다짐, 희망. 세상에서 자주 흐려지는 그런 것들이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거 아니겠어. 우리 만나면 오래오래 같이 있자. 안부를 전하던 우리가 어색해질 만큼. 서로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질 만큼.
그리움을 담아.